한국사능력검정 기본 기출문제·모의고사·오답노트·자동채점

2023년10월21일 35번

[과목 구분 없음]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3점]

  • ① 의열단을 조직하다
  • ② 서전서숙을 설립하다
  • ③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다
  • ④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다
(정답률: 33%)

문제 해설

정답> ②
'국권 회복을 위한 머나먼 여정'이라는 제목 아래 기획 의도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이상설! 북간도, 헤이그, 연해주 등지로 이어지는 그의 치열했던 여정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구성 내용으로 '#1. (가)', '#2.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다', '#3. 대한 광복군 정부를 조직하다'가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인물은 보재 이상설(1870~1917)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을 중심으로 한 특사 3인이 파견된 것은 1907년 4월경*의 일이다. 고종이 을사늑약 강요의 불법성을 폭로하기 위해 특사를 파견한 것이다(헤이그 특사 사건)[헤이그 회의가 개최된 것은 6월 15일(~10월 18일까지 개최)].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의 특사가 헤이그에 도착한 것은 회의가 이미 시작된 직후인 6월 25일로, 특사들은 7월까지 활동하였다(7월 14일 이준 열사 순국).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은 결국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일 신협약 체결, (대한 제국) 군대 해산으로 이어졌다(각 1907.7.20/1907.7.24/1907.8.1). 그리고 일종의 망명 정부인 대한 광복군 정부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진 것은 1914년 상반기경의 일이다(추정). 보재 이상설(1870~1917)이 대한 광복군 정도령(正都領)을, 성재 이동휘(1873~1936)가 부도령을 맡았다.
*이때는 이준(1859~1907)이 한성[서울]을 떠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과 만난 때이다. 이상설은 사실 1년 전인 1906년 4월에 이미 대한 제국을 떠나 북간도 용정촌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두 특사는 6월 중순경 시베리아 철도 편으로 당시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지금의 상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주로공사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1887~?)과 합류하였다.
보재 이상설(1870~1917)을 중심으로 한 망명 애국지사들은 북간도[동만주] 용정에 민족 교육을 위해 서전서숙을 설립하였다(1906년 8월경).
오답 해설>
① 의열단이 조직된 것은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이다(약산 김원봉이 조직했다는 주장에 대한 유력한 반론 있음).
③ 동양 평화론을 집필한 인물은 안중근 의사(1879~1910)이다. 안중근 의사는 만주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여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동양 평화론을 저술하던 중 중국의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1910.3.26).
④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한 인물은 위암 장지연(1864~1921)이다. 당시 장지연은 황성신문의 주필로, 을사늑약의 강요에 반발하여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실었다(1905.11.20).

연도별

진행 상황

0 오답
0 정답